
오프닝 원칙
( *개인적으로 아는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
체스는 오프닝, 미들게임, 엔딩의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이중에 오프닝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수많은 오프닝 이론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오프닝 이론을 일일이 배운다는 것은 꽤나 지루한 일이다. 오프닝 이론은 그 자체로 내용이 방대하고, 내가 어떻게 두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두고, 그러면 그때 나의 최선수는 무엇이고... 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즉, 초반에 가능한 진행을 전부 외우는 일이다. 이런 암기의 과정은 당연히 어렵고 체스를 머리 아프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초보자의 경우에는 오프닝에서 나오는 수를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오프닝 원칙을 따라 진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오프닝 원칙은 오프닝을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때로는 오프닝 원칙을 따르는 게 최선의 수가 아닐 수도 있지만, 오프닝 원칙은 게임의 초반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좋은 방법을 제시해준다. (무엇보다도, 오프닝 이론을 외우고 있지 않더라도 오프닝 원칙만 따른다면 준수한 오프닝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오프닝 원칙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중앙을 장악하라.
2. 기물을 전개하라.
3. 빠르게 캐슬링해라.
4. 초반에 같은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지 마라.
5. 퀸을 빠르게 꺼내지 마라.
6. f폰을 움직이지 마라.
7. 나이트를 비숍보다 빠르게 전개하라.
물론 이는 원칙일 뿐이고, 때로는 오프닝에서 원칙을 어기는 게 더 좋은 수일 때도 있다. 이득을 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오프닝 원칙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오프닝 원칙이 왜 생겨난 것인지를 이해한다면 이는 체스를 이해하는 데에 (특히 초반부의 진행에 대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체스는 전쟁에 비유할 수 있다. 왕이 있고, 군대가 있다. 왕이 죽으면 전쟁은 패배한다. 따라서 당신은 왕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군대를 이용하여 적과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까? 당신의 역할은 훌륭한 지휘관이 되어 군대를 이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군대를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보병은 어떻게 운용해야 하고, 탱크나 전투기는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들이 각각 어떤 상황에 특화되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리한지,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당신의 부대를 잘 활용할 수 없을 것이고, 자신의 군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는 적을 만난다면 당신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이 포지션이 바로 게임을 시작할 때의 모습이다. 당신과 상대의 기물은 아직 제대로 활성화되어있지 않다. 이들은 아직 전장에 투입되지 않은 채 시작 지점에 모여 있다. 그렇다면 초반에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요충지인 중앙을 빠르게 장악하고, 기물을 꺼내 올바른 위치에 배치시키고, 그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진형을 구축한다. 킹을 안전한 장소에 위치시킨다.
이 중에서 첫 번째로 의문점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중앙의 중요성이다. 왜 중앙은 다른 칸에 비해서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걸까?
1) 중앙을 장악하라.
중앙은 체스판에 있는 가운데의 4칸을 의미한다. 오프닝에서는 e폰과 d폰을 밀어서 이 칸에 대한 컨트롤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백은 주로 e4와 d4를 통해 중앙에 두 개의 폰을 모두 전전시키려고 하고, 흑은 주로 e4와 d4가 모두 배치되는 것을 방해하면서 백에게 밀리지 않는 중앙 컨트롤을 차지하려고 한다.
중앙이 중요한 이유 첫 번째는 기물의 활동성과 관련이 있다. 위의 포지션에는 b1, e5, h5에 나이트가 하나씩 위치해 있고, 이들이 컨트롤하고 있는 칸이 각각 색칠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나이트는 중앙에 위치한 e5 나이트이다. 먼저 b1에 있는 노란색의 나이트는 시작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상대의 진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기에 소극적이다. h5에 있는 파란색 나이트는 e5 나이트와 같은 랭크에 있지만 측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킹사이드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e5에 있는 나이트는 중앙에 배치되어 굉장히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필요에 따라 킹사이드로도 퀸사이드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e5의 나이트는 상대에게 강한 압박을 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을 할 수 있는 좋은 나이트이다.
나이트 뿐만이 아니라 비숍이나 퀸도 마찬가지로 중앙에 있다면 더욱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치고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다. (다만 비숍이나 퀸은 나이트와 달리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중요한 대각선을 차지하고 멀리에서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중앙에 배치될 때 가장 강력한 것은 나이트이다.) 따라서 중앙을 장악했다는 것은 기물들을 더욱 편하게 원하는 위치에 배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배치되어 활동성이 극대화된 기물들은 미들게임에서 적 진영을 공격할 때 조화롭게 활용될 수 있다.
중앙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상대가 중앙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기물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실전에서는 나올 수 없지만 위의 포지션에서 백은 흑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이다. 중앙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기물이 효과적으로 전개되어 있다. 따라서 흑은 기물을 전개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먼저 흑은 백의 중앙 컨트롤로 인해 e5나 d5를 할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공간 확보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흑은 중앙 폰을 밀더라도 e6나 d6를 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적어진다면 기물들이 서로 꼬이고 어색하게 배치되는 상황이 생기기 쉽다. 기물이 많을수록 영역 부족은 큰 문제로 나타난다.
또한 e6나 d6는 비숍을 중앙을 향해 배치하는 것에서도 문제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e6를 하게 되면 어두운 비숍의 길을 열 수는 있어도 e6에 배치된 폰이 밝은 비숍의 대각선을 잠재적으로 막아버린다. 따라서 흑은 적어도 하나의 비숍을 피앙케토하거나 두 개의 비숍을 피앙케토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피앙케토는 긴 대각선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비숍의 전개가 느리기 때문에 이를 백이 파고들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 외에도, 흑은 나이트를 전개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나이트를 중앙에 전개한다면 백은 e5나 d5를 통해 나이트를 밀어낼 수 있다. 따라서 흑은 나이트를 전개할 때 이러한 폰 움직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불편함을 가지게 된다.
결국 흑은 중앙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물이 꼬이게 되고 중앙으로 조화롭게 배치하기 어렵게 된다. 그 말은 기물을 제대로 배치하기 위해 더 많은 수를 소모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만큼의 여유를 백에게 주게 된다는 뜻이다. 만일 기물을 중앙이 아닌 측면을 향해 전개한다면 그만큼 병력이 분산되기 때문에 백이 병력을 집중시켜 공격했을 때 무너지기 쉬워진다. 반대로 백은 중앙을 차지했기 때문에 흑이 어색한 전개를 할 때 약점을 공략하기 쉬워진다.
2) 기물을 전개하라.
오프닝에서 e4나 d4와 같은 폰의 움직임로 중앙에 대한 컨트롤을 가져갔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기물을 전개하는 일이다. 사실 이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다. 기물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시작 지점에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나이트의 경우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강력하다. 따라서 Nf3 또는 Nc3를 두는 게 중앙을 향하면서도 중앙 칸에 대한 컨트롤을 가져가기에 자연스럽다. 비숍은 상대의 진영을 가로지르는 긴 대각선을 차지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밝은 비숍을 예로 들자면 Bc4로 전개하거나 Bg2로 피앙케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배치가 된다. (어떤 오프닝을 쓰느냐에 따라 비숍의 가장 효과적인 위치는 달라지게 된다.)
간혹 기물을 전개하지 않고 폰만 이용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기물을 전개하는 데 쓸 수 있는 수를 폰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폰을 미는 동안 상대는 기물을 전개할 것이고, 당장은 폰을 밀어서 상대를 압박할 수 있어도 그동안 기물이 전개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따라서 상대가 폰 푸시에 대처하고 난 이후 전개된 기물들을 활용해 공격할 때 잘 대처할 수 없게 된다.
기물 전개는 중요하다. 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빨리 전개하느냐에 따라서 포지션의 장악력이 달라지고, 오프닝에서의 주도권이 결정된다.
3) 빠르게 캐슬링해라.
캐슬링은 체스에서 규정되어 있는 특수한 행마 중 하나로, 킹을 움직인 적 없고 킹과 룩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 때, 킹의 움직임이 상대의 기물로 방해받지 않을 때 킹을 룩을 향해, 룩을 중앙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수이다. 오프닝 원칙에서는 가능한 빨리 캐슬링을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왜 빠른 캐슬링이 중요한 것일까?
캐슬링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왕을 안전하게 하는 데에 있다. 킹 세이프티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왕이 전장에 있다면 적은 당신의 왕을 향해 공격할 것이고, 당신은 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즉, 킹 세이프티가 무너지게 되면 적은 당신의 킹을 이용하면서 싸울 수 있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전술이나 심지어 체크메이트까지 생길 수도 있다.
오프닝 1번 원칙에서 서술했듯이 중앙을 장악하는 것은 백과 흑 모두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중앙은 가장 기본적인 전장이다. 백과 흑 모두 중앙에 폰을 배치하고, 나이트와 비숍을 전개해 중앙에 대한 컨트롤을 가져간다. 이때 킹을 중앙에 놔둔 채 가만히 있게 되면 중앙 폰이 교환되고 포지션이 열렸을 때 킹이 공격당하기가 매우 쉬워진다. 따라서 캐슬링을 빠르게 해서 킹 세이프티를 챙기면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캐슬링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앙에 대한 장악과 주도권은 빠른 캐슬링보다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캐슬링은 한 템포를 소모하게 된다. 만일 그 한 템포로 인해 중앙에 대한 주도권을 상대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이는 좋은 일이 아니다. 캐슬링을 해서 왕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캐슬링으로 인해 오프닝에서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상황에서 하는 것이 적절하다.
캐슬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킹사이드 캐슬링(O-O)이고 다른 하나는 퀸사이드 캐슬링(O-O-O)이다. 이중에서 더 흔히 사용되는 것은 킹사이드 캐슬링이다. 왜냐하면 킹사이드 캐슬링은 기물을 나이트와 비숍 두 개만 전개하면 되는 반면에 퀸사이드는 나이트와 비숍, 퀸까지 세 개를 전개해야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킹사이드 캐슬링이 더욱 빠르게 킹 세이프티를 챙길 수 있으며 자연스럽다.
반면,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 킹사이드 캐슬링과 퀸사이드 캐슬링의 차이점은 킹과 룩의 배치에 있다. 킹사이드 캐슬링을 하면 h1의 룩은 f1에 배치된다. 따라서 중앙에 오픈 파일이 생겨났을 때 룩을 오픈 파일에 배치하려면 Re1을 두어야 한다. 반면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면 룩이 바로 d1에 배치된다. 따라서 수를 소모하지 않고도 룩을 바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퀸사이드 캐슬링에는 작은 단점이 있는데, 바로 킹의 배치이다. 킹사이드 캐슬링의 경우 킹이 g1에 배치되기 때문에 폰 3개를 앞에 두고 있는 안전한 위치에 배치된다. 반면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면 킹이 c1에 배치되는데, 이 위치는 c1-h6 대각선이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캐슬링 시 h2폰이 잠깐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h2폰이 공격받고 룩으로 지켜주고 있는 상황이라면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기가 불편해진다.
일반적으로는 킹사이드의 기물을 꺼내기가 더 쉽고 캐슬링도 빠르기 때문에 킹사이드 캐슬링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하지만 만약 룩이 바로 d1에 배치되는 것을 활용해볼 만 하거나 상대가 킹사이드 캐슬링을 했을 때 반대 방향으로 캐슬링하여 폰 스톰과 같은 전술을 사용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예: 시실리안 디펜스) 퀸사이드 캐슬링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4) 초반에 같은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지 마라.
일반적으로 초반에 같은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는 것은 수를 낭비하게 된다. 오프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을 차지하고 기물을 전개해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다른 기물을 전개하는 데 쓰일 수 있었던 템포를 하나의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는 데 소모하게 되는 셈이다. 오프닝에서 한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고 싶다면 과연 그것이 여러 번 수를 소모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평가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기물을 전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 수만으로 충분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게 목적이라면 공격은 먼저 기물이 충분히 전개된 이후에 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초반에 같은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 (여러 번 움직이고 싶다면, 적어도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
5) 퀸을 빠르게 꺼내지 마라.
퀸은 가장 강력한 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치가 높은 기물이고, 다른 기물들과의 교환을 피해야 한다. 그 말은 퀸은 비숍이나 나이트와 같은 다른 기물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반드시 움직여 교환을 피해야만 한다. 따라서 퀸을 빠르게 꺼내면 퀸은 다른 기물들의 표적이 되기 쉽고, 결과적으로 여러 번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그만큼 수를 소모하게 된다. 오프닝 4번 원칙에 나온 것처럼 오프닝에서 같은 기물을 여러 번 움직이는 것은 손해이다. 또한 노출되어 있는 퀸을 위협하는 방법을 통해 이득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6) f폰을 움직이지 마라.
오프닝 원칙에서는 초보자들에게 f폰을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킹 세이프티와 관련이 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킹사이드 캐슬링을 하는 것이 퀸사이드 캐슬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f폰을 움직이게 되면 이는 킹사이드의 구조를 매우 약화시키게 된다. 중앙에서 킹을 향한 비숍의 대각선이 열리게 되고, 킹이 캐슬링을 하기 전 퀸이 h파일로 오면서 체크를 넣는 가능성이 생겨나게 된다.
f폰을 반드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프닝 중에서도 초반에 f폰을 움직이는 킹즈 갬빗이나 더치 디펜스와 같은 오프닝이 존재한다. 하지만 f폰을 움직이는 것은 꽤나 큰 리스크를 가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초반에 f폰을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권장된다. f폰을 움직여서 생기는 리스크와 리턴을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면 f폰을 움직여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위험을 안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
7) 나이트를 비숍보다 빠르게 전개하라.
오프닝 원칙에서는 나이트를 비숍보다 빠르게 전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사실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정도로 중요한 원칙은 아니다. 이 원칙에서 의미하고 있는 것은 기물 전개의 순서 차이이다. 결국에는 나이트와 비숍을 모두 전개하게 될 텐데, 나이트를 먼저 전개하고 비숍을 이후에 전개할지, 비숍을 먼저 전개하고 나이트를 이후에 전개할지의 차이이다. 다만 비숍이 나이트에 비해서 더 유연한 기물이기 때문에 나이트보다는 비숍을 더 늦게 전개하는 것이 선호된다.
위의 포지션에서 g1에 위치한 나이트가 전개될 수 있는 칸은 총 세 개이다. Nf3, Ne2, 그리고 Nh3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은 칸은 당연히 Nf3이다. 나이트가 앞으로 나오면서 중앙의 e5와 d4를 컨트롤하는 가장 활동적인 전개이다.
반면 나이트가 Ne2로 전개되면 밝은 비숍의 대각선이 가로막히게 된다. 비숍을 먼저 꺼낸 다음 나이트를 Ne2로 전개한다 하더라도 e2에 있는 나이트는 d4와 f4를 컨트롤하는데, 이는 중앙의 두 칸을 컨트롤하는 Nf3에 비해서 훨씬 수동적인 전개이다. 따라서 나이트를 e2로 전개하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두어지지 않는 수이다.
최악은 Nh3이다. 나이트가 중앙에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고 있지 않는 데다가 측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후에 나이트를 재전개하여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이 역시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두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나이트의 경우 가장 좋은 전개가 정해져 있다. 반면 비숍의 경우 가장 좋은 전개가 어떤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밝은 비숍이 전개될 수 있는 칸은 총 다섯 가지이다. 먼저 중앙을 향한 대각선으로 Bb5, Bc4, Bd3, Be2가 있고, g3를 둔 이후 Bg2를 하는 피앙케토가 있다. 이 중에서 어떤 칸에 배치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는 포지션에 따라서 달라진다.
1.e4 e5 오픈 게임의 경우 비숍을 c4 칸으로 꺼내는 게 유효한 전개가 된다. Bc4는 중앙을 향해 전개하는 것 중 가장 긴 대각선을 차지하는 수이고, 약점인 f7 폰을 타격할 뿐만 아니라 흑의 d5를 방해하는 효과까지 지닌다.
1.e4 e6 2.d4 d5 3.e5를 통해 들어가는 프렌치 어드밴스의 경우 밝은 비숍의 가장 활동적인 위치는 d3이다. 프렌치 디펜스에서 흑은 주로 킹사이드 캐슬링을 하게 되는데, 이때 d3에 전개된 비숍은 h7 폰을 타격할 뿐만 아니라 백의 킹사이드 공격을 도와주는 강력한 기물이 된다. 흑이 나이트를 f6로 전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릭 기프트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이 외에도 비숍은 상대의 나이트가 전개되었을 때 Bb5를 이용하여 핀을 걸거나, 반대로 상대가 나의 나이트에 핀을 걸었을 때 조금은 수동적인 Be2를 통해 핀을 풀어내는 등의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비숍은 가장 좋은 전개가 정해져 있는 나이트에 비해서 훨씬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한 유연한 기물이다. 따라서 나이트를 먼저 전개하고 이후에 비숍을 전개하는 것은 단지 순서의 차이일 뿐이지만 비숍의 전개를 늦춤으로써 먼저 포지션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본 이후에 비숍의 전개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결론)
오프닝은 결국
1. 중앙 폰 구조를 어떻게 결정하고
2. 기물을 어떻게 전개하며
3. 킹을 어느 방향으로 캐슬링할 것인가
이 세 가지에 관한 문제이다. 즉, 상대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어떠한 포메이션을 구축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들게임을 잘 플레이할 수 있는 전술과 전략에 관한 실력이겠지만, 오프닝을 통해 만들어진 배치는 미들게임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에 오프닝의 중요성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오프닝 원칙에 대해서 배우고 이 원칙들을 적용하며 플레이하되, 때로는 원칙을 어기면서 플레이해보기도 하면서 왜 그런 원칙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프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기물 배치에 대한 이해도도 높여줄 것이고, 초반 오프닝 단계에서 상대가 어떻게 기물을 전개할지에 따라서 내가 어떤 수를 두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